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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권칼럼] 용산이 쏘아 올린 퇴행이라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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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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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이 나는 날보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대부분이었던 중세 시대는 사는 것 자체가 암울했던 것 같다. 유럽의 제후들은 늘상 누군가를 단두대에 올려 처형하면서, 시장을 만든다. 구경꾼들은 단두대에 오른 사람이 진정 죽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저질렀는지 알지 못한 채, 지루한 일상에 좀 색다른 볼거리를 즐길 뿐이었다. 군중을 선동하기 위한 볼거리(event)로 단두대 처형이 지루해지면, 누군가를 마녀라고 지칭하고 불태웠다. 그렇게 불안한 지지기반을 유지하면서, 사회질서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민중은 결코 소 돼지처럼 우매하지 않았다. 또 소상공인과 대학교육을 받은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면서 중세의 가을근대의 봄을 잉태했다. ‘중세의 가을이 파괴를 통해 퇴행을 가져왔다면, ‘근대의 봄은 새로운 혁신과 발명을 만들어냈다.


  2021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학회와 시민단체는 새로 집권하는 정권의 정책 기조를 예측하는 다양한 모임을 만들었다. 한 세미나에 참석해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미디어 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 주제였다. 세 가지를 예측했었다. 첫째는 여소야대 구조에서 윤 정부가 선택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것이지만, 현실은 시행령을 통해서 헌법 위에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미 검찰청에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익숙한 걸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미디어 정책은 2008년 미디어법 체계를 혁신하는 새로운 제도와 정책도입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인적청산을 통해서 자기 사람 챙기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명박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예외 없이 선택한 가장 나쁜 선택지였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셋째는 보수정권 특유의 시장 친화적인 정책과 제도설계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앞의 두 예측과 달리 세 번째 예측은 어느 정도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현재의 미디어 관련 법체계가 만들어진 것이 2008년 보수 정권 때 설계된 것이고, 보수정권은 특별히 시민단체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세 가지 예측은 적중했다. 모두 나쁜 선택지로.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퇴행이다.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지도 혁신을 하지도 못한 채, 뒤로 후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디어 정책을 가을 햇볕에 몸을 말리기 위해 담장을 넘어가는 구렁이처럼세월만 축내고 방치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단두대와 화형대라는 중세시대의 두 가지 수단을 이용하여 퇴행적 미디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멈추지 못하는 전차처럼 폭주한다. 오직 내 것을 챙기기 위해 모든 것 파괴하는 사람처럼. 대표적 패착의 하나가 수신료 분리징수이다.


  지난 712일 시행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그동안 한국전력이 KBS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던 전기요금에 수신료를 통합 징수하던 것을 분리고지하도록 의무화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TV수신료(KBS·EBS 수신료) 분리 고지를 위해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기간은 고작 10일이었다. 그 후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를 얻기까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통상 일반법령 입법 예고 기간이 40일임을 감안하면 폭주다. 입법 예고기간 10일은 국가적 재난이나 긴급구제의 필요성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 적용한다. 1995년부터 한국전력이 징수대행을 맡아왔던 수신료통합징수를 단 10일간의 입법예고를 해야 할 정도로 다급했던 상황은 없었다. 물론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기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시행령이 미흡해서 TV수신료 납부가 불편했거나 국민 생활을 재난 수준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공영방송 스스로 수신료 납부제도와 면제, 수신료 집행의 투명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고, 감독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랫동안 이러한 상황을 방관해온 게 문제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재난적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시행령 개정이 공영방송 전체 시스템에는 새로운 재난이 되고 있다.


  2022년도에 한전이 징수대행을 통해 거둬들인 수신료는 총 6,934억 원이었고, 이 가운데 467억 원(전체의 6.73%)이 한전에 징수대행료로 지불되었다. 교육방송인 EBS에 배당된 금액인 약 200(전체의 3%)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KBS에 배당되었다. 물론 그동안 학계는 물론 국회, 언론단체, 시민단체에서도 수신료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왔다. 언론인권센터도 KBS의 투명한 수신료 집행과 신뢰할 수 있는 공적책무수행에 대한 공개를 요구해왔다. 또 공영방송의 공적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해 왔다.


  그러나 이번 수신료 분리징수는 기존에 시민단체가 요구했던 개혁과는 결이 다르다. 정부여당과 보수단체는 수신료 분리징수에 앞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수신료 제도를 폐지하고 공영방송을 축소한다는 왜곡된 허위정보를 퍼트렸다. 실제로 북유럽에서는 가구당 부과하는 수신료 대신 공공서비스세로 공영방송 재원 조달 방식을 전환했다. 프랑스도 북유럽처럼 특수목적세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조세전환이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간섭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야당의 반대로 당분간 부가가치세 일부에서 공영방송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독일은 TV수상기 보유 대수에 따라서 부과하던 수신료를 가구당 일괄적으로 납부하는 특별부담금으로 공영방송 재원제도를 전환했다. 국내에 수신료를 폐지했다고 잘못 알려진 영국에서도 수신료는 동결되었을 뿐이며, 차기 BBC 칙허장 개정 때 인상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2018년 스위스에서는 수신료 폐지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 공영방송 운영을 위해 현행 제도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결과적으로 폐지안은 부결되었다. 한마디로 공영방송이 공적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가장 바람직한 재원제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숙고하고 새로운 제도를 발명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국민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견수렴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도 없었다. 만일 국정을 운영하는 책임자가 정상적 통치행위로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했더라면, 수신료 분리 징수에 따른 대안도 함께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안을 제시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졸속으로 시행령을 마련한 듯 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공표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제43(수신료의 납부통지) 2항은 기존 시행령의 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에서 행하여서는 안 된다로 단 한 줄만 바꾸었다. 제대로 된 법조항 축조라면 행할 수 없다던가 행하여서는 아니 된다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전은 수신료 징수를 대행할 때, 전기세 징수라는 고유업무와 결합하여 TV수신료를 고지할 수 없다. 그러나 별도로 고지할 수는 있다. 다만 한전이 고유업무인 전기세 고지서와 별도로 TV수신료 고지서를 발급할 경우, 시청자로부터 자동납부 동의와 같은 별도의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고, 새로운 행정업무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한전이 TV수신료 징수수수료는 6.15%(467억원) 정률에서 증가한 행정수요를 반영하여 현행 수수료액수의 두 배 이상이 필요하다. 또 수수료도 정률(6.15%)이 아닌 정액(최소 900억 원 대)이 필요한 것이다. 수신료징수액은 줄어들고, 대행료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물론 KBS와 한전이 체결한 징수대행 업무협약에 따라서 2024년 말까지 한전은 징수수수료를 올릴 수 없지만, 업무협약 체결 당시와 바뀐 상황을 감안하여 징수수수료는 조정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공영방송에 남는 수신료 수익은 현저하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인력 감원은 물론 신규 프로그램 제작 축소와 재방송 비율 증가, 저예산 외주제작프로그램의 증가가 불 보듯 예측된다.


  물론 이번 시행령은 한전이 아파트 단지와 같은 공동주택과 맺은 약정으로 관리비에 TV수신료를 병합하여 고지하는 행위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아파트 거주세대는 전체의 약 1/4로 추정되지만, 인구로 따지면 인구의 1/2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방송법 시행령 제42조 제2항만으로 공동주택의 관리비와 수신료를 분리 징수할 수는 없다. 문제는 개별가구이다. 단독주택이나 관리사무소가 없는 공동주택은 개별고지서를 받게 되는데, 이 경우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당연히 집단소송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단독주택은 분리 고지를 받는데, 관리사무소가 있는 공동주택은 관리비에서 자동으로 TV수신료를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수신료 징수방식 변경으로 시청자의 수신료 거부의사는 증가할 것이다. 한전이나 공영방송 징수대행사가 납부대상자의 주소를 확보하여 각 가정에 고지서를 보내더라도, 시청자가 납부한다는 보장은 없다. 마치 대한적십자사 회비 고지서와 비슷하게 납부하지 않고 외면할 가능성이 더 크다. 수신료는 1998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서 TV수상기를 가지고 있는 세대면 누구나 내야 하는 특별부담금이다.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세대에 대해서는 KBS가 추징과 함께 가산금을 청구한다. 그러나 이때도 해당 세대가 TV수상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납부를 회피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징수원이 각 가정에 들어가서 TV수상기를 확인할 방법이 여의치 않다. 시청자는 현행법에 따라서 불법임에도 징수원들과 숨바꼭질을 하게 될 것이다. 혹여 징수원에서 적발되면 준조세 체납자로 전락하고, 가산세(미납액의 2%) 부과와 더불어 상습체납의 경우에는 언제든지 고발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물론 방송통신위원회는 KBS의 상습체납자에 대한 가산세 부과와 추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체납자의 법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장하는 시행령 개정이유 가운데 하나인 시청자의 선택권 확대는커녕, 법적 불안정성만 가중하고 있다. 그동안 KBSEBS가 제공해왔던 상업미디어에서 제공하지 않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영상콘텐츠를 시청자는 앞으로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장에서 제공하기에는 수익성이 낮아서, 공적 보조를 통해서 시청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되는 기본공급은 최소공급, 빈약한 공급이 될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망가트리는 일이 아니다. 미디어 환경은 이미 지상파 중심의 실시간 방송에서 OTT 중심의 선택형 소비로 바뀌었다. 환경변화에 맞는 새로운 제도와 규범을 발명해 낼 시간이다.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여야로 나뉘어 매번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을 누가 추천할지만 몰입하지 말고, 이미 실효가 떨어진 방송법을 미디어법으로 개선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고민거리는 산적해 있다. 예컨대 미디어는 무엇인지 정의부터 필요하다. 그리고 공공미디어와 상업미디어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할지. 공공미디어의 재원구조는 어떻게 가져갈지. 공공미디어와 상업미디어의 차별적인 공적책무부여와 실행절차, 결과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용물과 광고가 구분되지 않는 환경에서 광고 규제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내용규제는 현재와 같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계속 맡을지. 자율규제를 도입한다면, 공적규제와의 역할분담과 처리절차는 어떻게 설계할지. OTT로 불리는 규제 밖 영역에 있는 미디어에 대한 내용규제와 형식규제는 어떻게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하긴 정부와 국회는 아직까지 202388일에 개정된 영화와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과 지난 3월 개정된 동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OTT에서 제공하는 영상콘텐츠에 대한 심의 관련 법령도 정비하지 않고 있다. 영비법과 시행령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사후심사과정에서 OTT사업자가 자체등급분류를 통해 유통시킨 영상콘텐츠의 위법성과 유해성을 발견했을 경우, 등급 조정 명령과 더불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콘텐츠심의를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령은 방심위에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영등위가 유해한 콘텐츠에 대한 심의를 요청하더라도, 방심위는 사실상 손발이 묶여있는 셈이다.


  현재의 미디어판을 통해서 중세의 가을이 더 깊어지고 국민이 계속해서 시름시름 앓게 될지, ‘근세의 봄을 가져올 새벽을 깨울지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용산이 쏘아 올린 공은 지금까지 퇴행만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의 뒤에서 병풍처럼 박수만치는 서울의 아이히만이 아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서울의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대통령의 참모이든 언론인이든.



* 위 칼럼 내용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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