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칼럼] “흉악범이라도 인간의 존엄 지켜줘야… 재범방지·범죄예방 실익도 크지 않아”


 ”흉악범이라도 인간의 존엄 지켜줘야… 재범방지·범죄예방 실익도 크지 않아”

‘알권리=공공성’으로 볼 수 없어… 공개허용 특례법도 위헌성 다분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의 피의자 우웬춘의 얼굴이 공개됐는데, ‘그 정도가 뭐가 문제냐’는 생각이 당연히 들 정도로 그의 범행은 잔혹하고, 역겹다. 그러한 마당에 흉악범의 인권이니, 초상권 운운하는 것이 피해자 가족에게 죄송하고, 국민 일반의 법감정과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 강호순 사건이 문제됐을 때 몇몇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강호순 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연쇄살인범에게까지 신원 보호원칙을 적용해야 하는지 따져볼 때’라거나, ‘국가가 존중하는 인권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영역에 한정돼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흉악범 얼굴 공개의 근저에는 이같이 흉악범죄자의 인권은 보호가치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본다.

그러나 흉악범죄자라 하여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흉악범이 원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이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인격권 침해를 정당화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언론사들이 제일 먼저 내세우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이다. 그러나 헌법상 기본권은 국가를 권리행사의 상대방으로 하는 공권이며, 국민의 ‘알 권리’의 핵심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즉 정부에 대한 국민의 일반적 정보공개를 구할 권리라고 할 것이고, 따라서 국민들이 흉악범의 얼굴을 궁금해 한다고 해서 언론이 대신 흉악범의 마스크를 강제로 벗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범죄보도는 사회적 규범의 내용과 위반시의 제재가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실현되는가를 알리고, 여론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공공성이 있다고 하겠으나, 범죄혐의자에 관한 보도가 반드시 범죄 자체에 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견해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다거나 알고 싶다고 하여 알 권리의 대상이 된다고 하자면, 유명 여자연예인에 대한 사생활이 녹화된 몰래카메라 비디오테이프를 언론이 공개하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 않겠는가.

흉악범 얼굴 공개의 또 다른 목적 또는 효과로 예를 드는 것이 범죄예방이다. 그러나 흉악범들이 얼굴 공개될 것을 걱정하고, 또는 이전에 얼굴이 공개됐기 때문에 범죄를 자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본다.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를 아예 부인할 수야 없겠지만, 사형이 형벌로 규정되어 있다가 폐지된 경우에도 그와 관련된 범죄가 특별히 증가하지 않았다는 연구가 있는데, 하물며 얼굴 공개 정도가 흉악범죄에 대한 예방적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또한 1회성 언론 보도로 국민들이 흉악범의 얼굴을 기억했다가 그 흉악범의 범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 기대하기 어려운 얘기이다.

최근에 언론들이 우웬춘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2010년 개정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서 수사기관이 특정강력범죄자의 얼굴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얼굴 등 신상공개를 할 수 있는 주체는 수사기관이지 언론이 아니다. 또한 위 법은 신상공개의 요건으로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를 들고 있는데,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얼굴공개라는 수단으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그 외에도 범행수단이 잔인하다는 등의 요건은 명확하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기본권 제한입법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위헌성이 농후한 법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규정한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위헌법률심판사건에서도 대상자를 범죄퇴치수단으로 취급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고 범죄억지효과가 미미하거나 불확실한데 비해 인격권침해가 심대하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위헌정속수를 넘지 못해 위헌결정에 이르지는 않았었다.

흉악 범죄의 피해자 또는 유족의 입장이 되었을 때 같은 얘기를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나, 한편 그러하기에 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위 글은 한국일보 4월 17일 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