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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권통신 제866호] 방송계 비정규직은 '노동자'가 될 수 없나

날짜:2020-07-01 17:00:00 | 글쓴이:언론인권센터


방송계 비정규직은 '노동자'가 될 수 없나


2020.07.01.


[1] <언론인권칼럼>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생각하며

[2] <위클리 미디어픽> 차별금지법, 평등한 사회를 위한 첫 발걸음

[3] <유튜브 컨텐츠> "제18회 언론인권상 시상식" 스케치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생각하며 


정인숙|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PD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올해 3월부터 3개월여에 걸쳐 현장조사와 자료 검토, 비정규직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 면접조사, 서면조사 등 다각적인 조사활동을 거친 결과를 발표하였다. 결론은 이렇다. “이재학 PD는 고용의 형식과 관계없이 청주방송의 노동자였고, 동료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진상조사보고서 12쪽)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상조사위가 밝히고자 한 ‘노동자였음에 대한 증명’의 노력들이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 1항에서는 근로자의 정의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자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방송노동계의 현실은 14년간 임금을 받고 회사를 위해 일한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노동자였음’을 증명하고 법리다툼을 해야 할 만큼 부조리하다.

  자명하게 인식될 것처럼 보이는 노동자의 지위가 법으로 ‘노동자성’을 다퉈야 하는 관계라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노사관계이며 그 자체로 최악의 노동여건임을 말해준다. 노동은 했으나 노동자는 아니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가장 극심한 노동소외를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이 노동의 생산물에서 소외되고, 노동과정에서 소외되고, 영장류인 인간의 유적(類的) 존재에서 소외되고, 인간관계에서 소외된다는 4가지의 노동소외를 설명했다. ‘노동자성’이라는 이 인정머리 없는 법개념의 증명은 어쩌면 그보다 더 가혹한 노동소외일지도 모른다. 부당하게 행해지는 노동조건을 감내하면서 노동을 했음에도 노동자임을 법으로 다퉈야 하는 방송노동계의 현실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보고서는 ‘방송계 노동자성’의 판단기준으로 다섯 건의 대법원 및 하급심 판결사례를 제시하였다. 판례들의 결론은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보다는 그 실질성에 있어 노동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프리랜서가 많은 방송노동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법원은 여러 판결을 통해 방송제작현장의 프리랜서들에게도 일반적인 노동자성 판단기준을 적용해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 이재학PD는 명백히 청주방송의 노동자였다는 논리적인 결론에 이르고 있다.

  종속적인 관계의 증명이라는 복잡한 법 논리를 떠나서 그는 14년 이상 임금을 받고 근무한 전문 연출자였는데, 그와 같은 명백한 현실이 존재함에도 ‘노동자성’을 증명해내야 하는 방송계의 노동현실은 언제쯤 개선될 것인가. 보고서는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청주방송에서 벌어졌던 문제는 청주방송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러 방송사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문제이다”(227쪽)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방송계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성’의 입증을 위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법리 다툼이 이어질 것인가. 정부는 미디어산업과 콘텐츠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논하기 전에 사업자의 ‘사업자성’을 제대로 감독하고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조사방법을 통해 방송계의 노동환경과 비정규직 문제를 드러낸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과 깊이 있는 보고서의 내용에 경의를 표한다. (20.07.01.)




차별금지법, 평등한 사회를 위한 첫 발걸음

 
  제21대 국회 개원 한 달만인 지난 6월 29일, ‘차별금지법’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에는 성별, 장애, 인종, 종교·사상,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처음 등장한 이후 14년 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총 여섯 차례나 발의되었지만, 일부 종교계에서 동성애 옹호를 위한 법이라는 이유로 반발하면서 법안은 단 한 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이어 지난 6월 30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성별·종교·장애에 따른 차별금지법을 명문화한 '평등 및 차별금지법에 관한 법률'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부 언론은 지속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보태면서도, 동시에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3월 [차별금지법은 함께살기법]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나타난 국내의 중국 혐오와 인종차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을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차별, 조현병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정신장애 차별을 다루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대담을 빌어 우리 사회 차별 문제의 현주소를 짚어내었습니다. 대담 중 인종차별 연구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윌리엄스 교수는 “‘나는 한번도 누군가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차별적인 행동을 하기에 최적화된 사람일 수 있다.”면서, “내가 타인을 차별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가장 보통의 차별]) 



  경향신문이 지난 1월부터 연재한 [가장 보통의 차별]은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차별은 누구나 겪지만 공기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으며, 자신이 차별하고 특권을 누리는지 의식하지 않으면 알기 힘듭니다. 이 기사에서는 모든 사람은 다중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수자로서의 권력을 누림과 동시에 소수자로서 차별 받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독자가 직접 ‘나의 차별 경험 차트’를 그려볼 수 있도록 구성한 기획도 신선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뤄낼 때가 온 것일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혐오와 차별을 불식시켜줄 전능한 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지 한국 사회에 혐오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세운다는 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평등기본법’을 제정한다는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 없는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결의이자, 이러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앞으로 우리 시민들의 더 큰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