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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기자의 책무는 취재윤리와 인권보호에 있다

날짜:2021-03-25 14:50:00 | 글쓴이:언론인권센터



기자의 책무는 취재윤리와 인권보호에 있다


지난 1월 25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건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박 전 시장이 업무와 관련하여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인권위 결정에도 불구하고 몇몇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박원순 전 시장을 옹호하며 가해자 중심적 태도를 보였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급기야 지난 19일(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취재한 기록을 모은 <비극의 탄생>이 출간됐다.

책의 저자인 손병관 기자는 출간 전부터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목격자들의 증언을 담았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기자'가 '취재'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로 이루어진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극의 탄생>은 기자로서 가져야 할 취재윤리 지키지 않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책이다. 또한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피해의 집약체다.

취재원이 기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했다 하더라도, 후에 보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취재원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 옳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 3조에도 ‘취재 대상을 존중한다’는 항목이 있다. 하지만 손 기자는 취재원의 증언을 동의도 받지 않고 책에 실었다(책 149쪽 참고). 그는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다는 소명”을 위해 최종 동의를 구하지 않고 증언을 책에 옮겼다고 밝혔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재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용을 하는 일은 기자윤리에 어긋난다.

기자가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진실을 취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진실을 드러내는 취재 행위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과 명백히 다르다. 일반 사회 여론과 동떨어지고, 검증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사안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없으며 취재 행위로는 더더욱 인정될 수 없다.
 
인권위에서는 “박원순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낸 사실은 인정된다” 그리고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 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므로, 사실 인정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손 기자는 대화의 빈도와 목적, 내용이 모두 베일에 싸여있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피해자가 받은 사진이 얼마나 더 노골적이고 성적인 의미를 내포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미 성희롱으로 판단된 사안이지만 본인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검열하려고 하는 태도는 매우 폭력적이다. 마치 내용물이 공개된다면 사건의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끊임없이 기자가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데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자라는 직업이 갖는 힘은 여전히 크다. 기자가 취재를 통해 보도한 내용은 생산자가 ‘기자’라는 이유로 신뢰성, 객관성을 담보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자는 일반인이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는 일반적인 수준과는 달라야 한다. 일반인들이 주고받을 법한 내용을 기자의 이름으로 쓰는 것을 취재라 부를 수 없다. 손병관 ‘기자’는 자신의 관찰이 전부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에 기대어 시대에 뒤떨어지는 개인 의견을 취재기로 둔갑시킨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처럼 언론의 역할도 그에 맞춰 변화, 발전해야 한다.  진실 추구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침해되는 인권이 없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배제되고 차별받는 존재들을 찾아 이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오늘날 언론의 책임이다. 
 
언론인권센터는 <비극의 탄생>이 언론의 관점에서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언론인권적 관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라고 판단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