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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후기][2019 미디어인권 전문과정] 혐오에 대항하는 언론과 시민을 위해 / 신우혁

날짜:2019-12-24 16:25:00 | 글쓴이:언론인권센터





혐오에 대항하는 언론과 시민을 위해

 

수강생 신우혁 

 

 

아주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 최초의 극영화이자, 현대적인 촬영 기법을 최초로 도입하여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바로 1915년 작 <국가의 탄생>입니다. 그러나 이런 업적에도 숱한 논란이 됩니다. 바로 영화 서사 전반에 걸친 인종차별 때문입니다. 흑인을 지능이 모자라고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인간으로 묘사하는 반면,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는 악을 처벌하는 집단으로 등장합니다. 당시 수명이 끝나가던 KKK는 이 영화 개봉 후 부활하여 지금까지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혐오에 기반을 둔 이미지가 현실에 영향을 끼친 사례 중 가장 강력하고도 악질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그저 강한 흡입력을 가진 서사의 문제로만, 혹은 한 세기 전 인종차별이 횡횡하던 시기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인종, 성별, 장애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미디어의 혐오표현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를 위시한 많은 미디어는 늘 강력한 재현의 도구로 존재해 왔습니다. 인권 담론의 발전과 함께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미디어들도 있지만, 이와 반대로 어떤 매체들은 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거리낌 없이 혐오표현을 사용합니다. 문제는 혐오표현을 토대로 여론이 만들어져 소수자를 공격하는 담론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입니다. 모순적이게도, 오히려 혐오표현은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혐오표현을 연구한 찰스 로런스에 따르면 혐오표현을 맞닥트리는 순간에는 이성적인 사람이더라도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더 나아가 소수자들이 혐오표현에 대해 침묵과 도피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미디어가 지속해서 혐오표현을 만들어낸다면,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의견이 배제되지 않아야 하는 공론장에서마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얼어붙게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언론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공론장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 정치에 모두가 참여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몇몇 언론들은 사회가 법적으로라도 처벌하는 것이 옳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업 중 혐오표현의 법적인 규제가 오히려 약자들의 대항을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교묘한 표현들은 규제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고민을 낳았습니다. 법적 규제가 표현의 자유도, 약자를 보호하지도 못하는 지점이 있다면 결국 언론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합니다. 수업에서 혐오표현과 사회적 소수자를 낙인찍는 언론, 그리고 그에 맞서 그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언론의 사례를 풍부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후자를 대항언론으로 지칭하고 소수자들과 시민들에게는 더 많은 대항언론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항언론이라는 개념은 혐오표현에 맞서는 실마리이자 또 다른 고민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혐오표현에 맞서는 언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안일하고도 원론적인 결론이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시민들과 약자 간의 연대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수익이 된다면 혐오표현을 이용하는 언론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대항언론이 혐오표현에 맞서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사안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출발점은 같습니다. 언론과 시민 모두 하나의 대원칙, 즉 혐오표현을 퇴출해 사회적 소수자를 공론장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원칙의 공유가 그 출발점입니다. 민주주의의 시민은 늘 고민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 미디어 인권 강좌는 인권의 역사를 훑음으로써 그 원칙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었습니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다시 주위의 배제된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