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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후기][2020 청년미디어인권교육] 언론, 자유와 통제 사이의 균형 / 이주형

날짜:2020-10-07 18:00:00 | 글쓴이:언론인권센터


언론, 자유와 통제 사이의 균형



수강생 이주형



 

언론인권센터에서의 수업마다 항상 내게 건냈던 질문은,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어떤 곳일까였다. 두 번째 강연의 이유경 기자님이 보여주듯이, 우리가 흔히 타고 내리는 지하철에서의 일상은 오직 사회가 허용한 정상의 범위에서 행해지는 것에 불과했다. 해당 수업을 통해 우린 이 사회의 정상의 범주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비정상적으로 규정해나가며 이룩해나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하게, 한국의 사회는 개인의 자유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내게 인권이 올바르게 보장되는 사회는 자유가 모두에게 보장되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으로 행해지는 곳이다. 달리 말하면, 자유와 통제가 올바르게 균형을 이루는 곳이다. 올바른 균형이 온전히 이룩될 경우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타인에게 올바르지 않은 위해를 가하지 않고, 여성 남성 노인 아이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모든 이에게 법의 손길이 뻗치며,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한 이들이 온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유와 통제는 서로를 밀어냈다. 개인은 자유롭고자 하고, 사회는 규범에 따라 통제하고자 했다. 개인은 항상 권리를 보장받길 원하고, 사회는 그 권리가 지나치게 범람하게 되는 것을 경계했다. 따라서 개인은 모여서 그 사회를 관찰하고 감시할 수 있는 하나의 창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언론이다. 하지만, 언론에선 본래적 취지와는 달리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나 이해관계에 따라 인재를 선별하는 게이트키핑이 만연해졌다. 이제 사람들에게 언론은 자유롭게 알 권리를 보장받고자 하는 개인의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개인은 다시금 자유롭고자 하는 원칙에 따라 자신이 소비자이자 곧 생산자가 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다원주의와 자유주의의 원칙에 따라 생겨난 1인 미디어 시대였다.


1인 미디어 시대는 그 취지에 걸맞게, 자유로운 풍토에서 컨텐츠들을 폭발적으로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이젠 차마 그 쏟아지는 정보의 양을 셀 수도 없고, 그 수량의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미명 하에서 쏟아진 자유의 범람은 숙고된 감정과 판단이 아니라 일차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모두 용인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양성갈등, 세대갈등, 정파갈등 등을 비롯한 엄청난 사회적 갈등 증가였다. 사실 자유라는 것은, 엄청난 책임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온전한 자유는 규범과 원칙을 통해 제약하던 것들이 우리의 내면에 자발적으로 담겨서 우리의 손으로 직접 행할 때 이룩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자유로 인하여 누군가의 자유가 모두 파괴된다면 그것은 온전한 자유가 아니고, 단순한 이기심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는, 사회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던 규범들을 우리의 손으로 온전히 행할 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는 다시금 그 속성상 그 책임으로부터도 벗어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금 우리를 중재하고 협상하는(mediate), 언론을 소환할 수 밖에 없다. 자유와 통제, 사익과 공익 사이를 팽팽하게 조이는 현은 오직 언론만이 조율해낼 수 있다. 나는 3주차에 본 센터에서 이루어졌던 수업에서 금준경 기자님의 말씀 중, 기자들 스스로 기자의 직업적 소명의식을 여전히 높이 상정하기에 그것을 깰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본 강좌의 마지막 시간의 토론에서 언급되었듯이, 올바른 저널리즘, 즉 올바른 언론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보도를 행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그들이 그 성취를 쉽게 이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가 아니다. 바로, 그들만이 그 정의로운 역할을 수행해줄 수 있는 중재자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며, 자유와 통제의 균형 사이에 그들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